고등학교 졸업식 날 카오루는 울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의 그와 그의 집과 그의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이른 벚꽃이 날리는 학교를 바라보면서.
카오루는 졸업 전날까지 이제껏 만나던 여자애들을 하나하나 만나 제대로 거절하고 그녀들의 미움을 받았다. 전화나 메일로 매듭을 짓지 않은 것은 그 나름대로의 최대한의 성의였다. 말을 트고 지내던 친구들이 졸업 후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울 때도 들어오는 질문에 애매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깊은 관계 같은 건 만들지 않기로 몇 번이나 스스로와 약속했었는데도 막상 닥쳐 보니 끊어야 하는 인연이 너무 많았다. 그는 처분하기 귀찮을 정도로 많아진 관계를 신중하게, 망설임 없이 정리했다. 그 과정의 번거로움은 지금까지 받아온 돌려줄 수 없는 호의의 대가였다.
교실 뒤편의 사물함에는 너나할 것 없이 낙서와 흠집과 자질구레한 물건이 가득했다. 학교 비품을 험하게 다루는 것은 언제나 1학년보다는 3학년이었다. 카오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책상이나 사물함 문짝에 그림을 그리고 사인을 하는 종류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학교와 관련된 물건들을 집에 가져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잘 쑤셔넣어 놓은 체육복과 교과서와 노트 더미와 여자애들에게, 클래스메이트에게 받았던 잡동사니들, 그런 것들을 전부 꺼내자 의외로 상당한 양이 되었다. 카오루는 그것들을 전부 그러모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웠다.
잔뜩 저장된 메일 주소를 더 이상 의미 없을 3년간의 기억과 함께 깨끗하게 삭제해버리는 것으로 봄맞이 대청소는 끝이 났다. 남은 것은 묵직한 졸업앨범과 졸업장뿐이었다. 교과서 틈에 섞어 버리려던 앨범은 마지막 순간의 변덕으로 그의 손 안에 남았다. 다시는 펼칠 일 없는 사진이라도 기념 삼아 간직할 만큼의 가치는 있었다. 어차피 책장에 빈 공간은 차고 넘쳤다. 아직은 빳빳한 앨범이 다 낡아 떨어지도록 먼지를 털어주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아주 조금 아쉬웠다.
카오루에게 세상은 평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유독 그에게 엄하게 대했다. 바른 몸가짐, 예의바른 태도, 똑똑한 대답, 형과 누나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던 것들이 그에게는 의무가 되었다.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빠른 카오루는 아버지가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했다. 말썽을 부리지도 낯을 가리지도 않았던 아이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예쁘고, 착하고, 영리한 소년이 되었고 곧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이들은 어른 없이 저들끼리 모여 있으며 으레 얌전한 아이는 따돌리고 장난꾸러기가 인기를 끄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카오루는 또래 사이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았다. 그는 어른들에게 귀엽게 보일 정도로만 실수를 하고, 장난을 치고, 아이다운 호기심을 부렸다. 그것은 그의 좋은 머리와 더불어 아버지의 훈육에서 몸에 밴 처세술 덕분이기도 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의 천성 덕분이기도 했다. 또렷한 눈을 반짝이며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사랑스러운 소년을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카오루는 여전히 예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얌전히 앉아있을 줄 알았다. 가끔 눈가가 부어 있거나 시선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있어도 그에 대한 동정 어린 호의를 더욱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는 변함없이 햇살 같은 카오루였다.
그가 흐리기 시작한 것은 막 열두 살이 된 초겨울부터였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학교도 빠지고 도착한 병원에서, 카오루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진찰을 받고, 피를 뽑은 후 목적이 짐작가지 않는 검사들을 거쳤다. 몇 시간쯤 지나고 처음의 진찰실로 다시 돌아가자 아침부터 계속 마주해 슬슬 얼굴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의사가 그와 그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제법 두꺼운 서류를 받았다. 아직 흰머리가 나지 않은 남자 의사는 카오루를 책상 맞은편에 앉히고 서류 대신 말로 설명해주었다.
카오루가 알기로 남자와 여자 외의 성별은 없었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설문지의 성별을 묻는 란에는 남자를 고르거나 여자를 고르거나, 두 가지 중 하나만 고르면 되었다. 선생님은 항상 남학생과 여학생을 나눠 체육 시간을 시작했다. 형과는 목욕을 같이 할 수 있었지만 누나와는 그럴 수 없었다. 의사가 앞에 놓인 빈 종이에 사람(으로 보이는 그림)을 셋 그릴 때 카오루는, 병원에 오자마자 작성한 검사지에 성별 란이 두 개였는지 세 개였는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의사의 설명은 난해했고 종종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왔지만 요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남자와 여자와는 별개로, 다른 종류의 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카오루는 그것을 혈액형과 비슷한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베타와, 알파와, 오메가였다. 베타는 보통 사람. 특이점이 없는, 자신이 베타라는 것을 상식에 끼워넣지 않아도 삶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 사람. 카오루는 그럼 선생님도 베타예요? 라고 끼어들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참았다. 알파와 오메가는 종 보존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만들어낸 오래된 돌연변이─“사람들이 옛날부터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다는 뜻이야,”─보통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림의 맨 왼쪽 사람 머리 위에 빨간 색으로 커다란 A를, 가운데 사람 머리 위에 동그랗게 생긴 기호를 그렸다.
“알파는 오메가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대부분 뛰어난 분야가 하나씩은 있어. 좋은 자식을 낳기 위한 성이니까, 부모도 뭔가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지.”
이해했니? 상냥한 물음에 카오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친 머리는 조금 전부터 과부하를 외치고 있었지만 등 뒤에 꼿꼿이 서 있는 아버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하는 사람, 뛰어난 사람……카오루네 반의 반장은 교내에서 수학을 제일 잘했다. 그 아이는 알파일지도 몰랐다. 반에서 제일 예쁜 카와니시나 어른만큼 키가 큰 미야기도 알파일까, 그는 어려운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대신 반 아이들을 설명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했다. 교실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맨 앞자리부터 한 사람씩. 창가에서 꽤 가까운 카오루 자신의 자리를 지나 교실 정중앙에 앉아 있는, 학급위원이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성격은 아닌 무라타니까지 분류를 끝냈을 때(카오루는 그를 베타로 정했다), 의사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황급히 머릿속의 교실에서 빠져나와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날 의사가 말한 ‘각성’이 무엇인지 카오루는 중학교 2학년이 절반이나 지나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더위가 막 가시기 시작하는 초가을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이 아직 규칙적인 생활을 되찾지 못한 때. 새학기가 시작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일주일 내내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려 그날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카오루는 수업 중 문득 찾아온 현기증에 잠시 연필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의식이 흐리고 조금 추웠다.
속이 메스꺼워 눈을 뜨자 조금 전의 교실이 아니라 양호실이었다. 머리는 여전히 아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는데 커튼 너머에서 나지막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수업―영어 담당 교사와 양호선생이었다. 잠깐 머리를 진정시킨다는 게 수업이 끝나도록 잠이 든 것 같았다. 왜 교실 책상에 엎어지지 않고 양호실 침대에 누워 있는지는 모르지만. 손을 뻗어 커튼을 걷었다. 목소리가 끊기고 걱정스러운 얼굴 둘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카오루는 제가 의식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말을 꺼내기보다 먼저 목구멍 아래에서부터 심한 토기가 올라왔다. 그는 그대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침대에서 쓰러지다시피 뛰쳐내렸다. 화장실이 양호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틀거리며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칸에 들어가 위 속에서 녹아내리던 것들을 모조리 쏟아냈다. 쓴 위액이 몇 번이고 식도를 역류했고, 더 이상 토해낼 것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누군가 배를 잡고 위로 밀어내는 것처럼 계속해서 구역질이 났다. 목은 따갑고, 위액은 침이라도 된 양 입 안에 고여서, 잠들기 전보다 더 어지러운 머리로는 도저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더러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는데 그를 따라온 영어 선생이 자세를 낮춰 그에게 무엇인가 말을 걸었다. 분명 그의 상태를 걱정하는 말이었겠지만 귀가 먹먹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가 힘없이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젓자 선생은 어떤 제스처로 받아들인 것인지 그의 팔을 잡았다. 반팔 셔츠 아래로 드러난 맨 피부에 손바닥이 닿는 순간 그 부분부터 소름이 전신으로 퍼졌다. 카오루가 눈에 띄게 몸을 떨자 선생이 몸을 더 숙여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림자가 지는 기척에 겨우 반응해 눈을 떠 선생을 보려고 했지만 계속된 아픔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시야는 형체도 잡지 못하고 온통 뿌옇기만 했다. 곧 눈물이 뺨으로 떨어졌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실루엣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선생의 눈이 있을 법한 위치에 시선을 두자 잡혀 있던 팔이 끌려올라가는 느낌이 났다. 선생이 끄는 대로 몸을 그에게 기대고 일어섰지만 몸은 힘이 완전히 빠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잠깐 선 채로 허리를 푹 숙여 다시 헛구역질을 시작한 카오루를 선생이 지탱하려 했으나 결국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들이쉬는 숨은 쓰고 흐르는 식은땀은 한없이 불길했다. 뱃속이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것 같았다.